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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풍경 기행
태산을 가다 황제들의 봉선의식 중국은 예로부터 오행의 영향을 받아 오악을 신성시 했다. 그 중에 동악에 해당하는 태산은 사람이 죽으면 모두 여기에 모인다고 생각했다. 역대 제왕들은 이곳에서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의식을 치렀다. 황제가 태산 산기슭과 산정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 봉선제였다. 봉선 의식은 덕치로서 이름을 높인 명군만이 행할 수 있었다. 진시황을 비롯, 한무제, 후한의 광무제, 당고종과 현종, 북송의 진종, 청의 강희제 등이 스스로를 명군이라 생각하고 봉선제를 지냈다. 특히 한무제는 태산 참배에 열을 올려 일곱 번이나 행했다. 청의 건륭제는 여섯 번 태산에 올랐으나 스스로 겸손한 나머지 봉선제는 지내지 않았다. 의식을 행하려면 산기슭에 토단을 만들고, 제문을 옥돌에 새긴 옥첩서를 토단에..
삼국지 인물기행/제갈공명2 이런 분위기 속에서 때로는 제갈공명이 화제를 제공하기도 했다. “자네들은 관리가 되면 한 주의 자사나 군의 태수 쯤 되겠군.” 친구들이 공명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럼 자네는 어디까지 출세를 할 건가?” 공명은 빙그레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피했다. 사실 그의 소년기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그가 태어난 것은 후한 말, 황건적이 난이 발발하기 4년 전이다. 황건적이 난이 시작됐을 때 제갈공명은 3살, 조조는 29살, 유비 23살, 관우 22살, 장비 16살, 손권 2살, 주유 9살, 사마중달은 5살의 나이였다. 융중이야말로 제갈량의 청년시절 첫 흔적을 남긴 곳이다. 삼국시대를 황건적의 난 발발부터 위나라의 멸망까지 잡으면 184년부터 280년으로 약 100년에 해당된다. 위나라..
삼국지 인물 기행/제갈공명1 호북성 양양을 가다 중국 호북성은 삼국지의 고향이다. 특히 상양(양양)은 제갈량이 유비로부터 삼고초려를 받아 ‘초려대’를 바친 곳이다. 초려대는 난세를 극복하려는 유비의 물음에 답한 천하의 형세 및 국가통일의 기본계획이다. 제갈량의 초려가 융중에 있었으므로 ‘융중대’라고도 부른다. 약 1800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 제갈량의 초려를 찾아가는 길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인천에서 상해 푸동을 경유해 호북성 무한에 도착하니 초여름의 긴 해가 평원에서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호북성은 동서 약 700km를 달리는 동안 산을 볼 수 없어 지루하다고 했다. 이곳이 바로 삼국시대의 형주다. 당시 형주목이 제갈량과 인척관계였던 유표다. 삼국시대 무한은 강하로 불렸던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