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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풍경 기행
부산 지역의 항일 운동사 부산 광복기념관 은 1876년 부산항이 개항한 이후 조국이 광복될 때까지 일본의 침략상과 그에 항거한 부산지역의 항일 독립 투쟁의 역사적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우리 선인들의 숭고한 민족정신과 광복활동을 길이 선양 전승하고 자라나는 후손들의 올바른 국가관을 확립하기 위하여 시민의 뜻을 모아 건립한 기념관이다. 서구열강의 무력에 굴복하여 문호를 개방한 일본은 자신들이 당한 똑같은 방식으로 조선에 개항을 요구했다. 운양호를 끌고와 조선의 해안에서 함포 사격으로 위협한 후, 1876년 조선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했다. 강화조약은 일본의 조선 해안 측량권 인정, 개항장에서의 일본인 거류지 설치와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치외법권 인정, 무관세 무역과 일본화폐 사용 인정 등의 내용이 담긴 ..
일제 침략의 관문, 부산 부산 근대사로 가는 길은 일제강점기 부관연락선과 경부선 철도를 고리로, 일본 열도와 한국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거점이었다. 그 당시 부산 인구 중 일본인 비중이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고 한다. 1925년에 진주에 있던 경남도청이 이전하면서 부산은 경남 전체를 아우르는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1931년 만주국이 세워지면서 전쟁 수행을 위한 물류기지로서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이런 이유로 부산에는 경남도청을 비롯, 부산부청, 부산경찰서 부산형무소 등 일제가 설치한 기관들과 동양척식회사 등이 집중해 있었다. 일제 침략의 관문이었던 만큼 침략에 저항하는 움직임 또한 활발했다. 박재혁 의사의 부산경찰서 폭탄의거를 비롯한 의열투쟁이 전개되었다. 학생 중심의 반일시위도 이어졌다. 안희제는..
부산을 통해 본 고난의 역사 국립일제강제동원 역사관 부산 남구 대연동의 부산문화회관 주변에는 우리 민족의 고난을 대변하는 볼거리가 많다. 유엔 묘지와 시립박물관이 인접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국립 일제강제동원 역사관과 유엔평화기념관이 있다. 국립 일제강제동원 역사관은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의 실상을 규명함으로써 성숙된 역사의식을 고취하고자 하는 취지로 2015년에 개관했다. 일제 강점기 때 부산항이 대부분의 강제 동원 출발지였고, 강제동원자의 22% 가량이 경상도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부산에서 개관한 의미가 있다. 일제 강제동원이란 일본 제국주의가 아시아 · 태평양 지역에서 침략전쟁을 벌이기 위해 실행한 인적 · 물적 동원 및 자금통제를 말한다. 강제동원은 당시 일제가 지배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자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