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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풍경 기행

https://www.fnbtoday.co.kr/news/view.php?no=416 남이섬에서 동정춘을 마시다 – FnB 투데이남이섬에서 동정춘을 마시다 / 음식과 술에 관한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www.fnbtoday.co.kr
삼국지 인물기행/관우3 시작 관우의 전설 번성 공방전부터 맥성 농성, 그리고 처형에 이르는 삼국지연의의 이야기 전개는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관우 사후에 전개되는 이야기는 정사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이 무렵 조조는 나이가 들어 극도로 쇠잔해졌고, 여몽도 병이 깊어 관우 사후에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이 두사람의 죽음이 관우의 원혼 때문이라는 민간의 전설도 생겨났다. 관우는 죽어서 곧바로 복수의 염원에 불타는 귀신이 되어 인간이 아닌 신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손권은 왜 관우의 머리를 조조에게 보냈을까. 당시 힘의 관계는 조조가 단연 우위에 있었다. 손권은 조조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고 그 목적을 달성하자 증거를 보낸 것을로 해석된다. 손권으로서는 유비와의 동맹을 파기하고 조조에 따르겠..
삼국지 인물/관우1 편에 이어 삼국지 인물기행2 편이 이어집니다. 재물의 신이 된 관우 관우는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사수관 전투에서 호걸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공손찬이 유비와 관우, 장비를 데리고 화웅을 물리칠 작전회의를 하고 있었다. 이때 전령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지금 화웅이 본진 앞까지 와서 싸움을 걸고 있습니다." 장군 두 사람이 도전에 응했지만 단 몇 합에 목이 날아가고 말았다. 원소가 명장이 없음을 탄식했다. 이때 관우가 나섰다. "제가 한번 해보지요. 화웅을 목을 가지고 와서 장군들에게 바치겠습니다." 원소가 화를 벌컥 냈다. "일개 마궁수 따위가 그따위 소리를 하는냐. 저 놈을 끌어내라" 옆에 있던 조조가 여러 장군들을 설득한 끝에 관우에게 더운 술을 한잔 권했다. "술은 그대로 놔두시..
관우는 왜 신이 되었나 언젠가 북경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미용실에 들어가 머리 컷트를 한 적이 있다. 미용실 한 구석에 화려한 도자기 인물상이 눈에 띄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 주인이 '관우'라고 답했다. 관우상 앞에는 새전을 담는 그릇이 놓여 있었다. 미용실 주인에게 관우는 청룡도를 휘두르는 명장이나 의리의 분신이라기보다는 부의 화신으로 부각되었다. 시골을 다니다보면 관제묘(관우 사당)이 있는데, 이때 관우는 사악한 무리를 물리치고 법을 수호하는 신으로 숭배된다. 춘절에는 대문 앞에 관우상을 붙여 놓는 집도 있다. 관우는 유비, 장비와 의형제를 맺고 평생을 충성과 의리로 살았다. 기록에 의하면 키가 2미터에 얼굴이 붉었으며 수염을 멋있어 미염공으로 불렸다. 이런 모습은 삼국지연의를 통해서 알려진 이미지..
제갈공명 처세술 명언 은 대부분 명나라 청나라 때 간행된 각종 문집에 포함되어 있다. 공명심서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제갈공명집'에 수록되어 있는 '장원'은 제갈공명의 글로 인정되는 것이 많다. 장원 전 50편 중에서 반 가량은 장수론이고 나머지 반은 병법론이다. 이중 장수론은 오늘날에 비추어보면 정치인이나 공직자의 직업윤리와 직결되는 것이 많다. 말하자면 지도자의 리더십을 다루고 있다. 이 주제에 맞는 내용을 발췌해서 소개한다. 내부 분쟁자 군이나 나라를 내부붕괴로 몰고 가는 무리는 다음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다. 1. 동료를 중상하고 도당을 만들며 능력이 있는 자를 비방한다. 2. 특별히 남의 눈에 띄도록 화려한 옷을 입는다. 3. 할 수도 없는 요술을 자랑삼으며, 이상한 말로 우롱한다. 4. 공적..
오장원의 쓸쓸한 가을 삼국지 인물기행/제갈공명12 회가 이어집니다 2년간의 북정 준비기간을 거쳐 서기 234년 2월, 제갈공명은 네번째 북정에 올랐다. 병력은 10만 명.야곡을 지나 유마로 식량을 운반하면서 위수 남안 무공으로 나아갓다. 위나라에서는 사마중달이 총대장에 임명되었다. 제장들은 위수에 진을 치고, 제갈공명의 군단을 기다리자고 했으나 사마중달은 그 계획에 찬성하지 않고 강을 건너 남쪽에 진을 쳤다. 병법에서 말하는 배수진이다. 사마중달이 장수들에게 말했다. "제갈공명이 용감한 자라면 무공에서 나와 산을 따라서 동쪽으로 향할 것이오. 만약 그가 서쪽으로 나와서 오장원으로 올라간다면 우리 군단은 안전할 것이오. 동쪽으로 가면 급전이요, 서쪽으로 가면 지구전을 벌이자는 것이다." 제갈공명의 군단은 ..
세 번의 북정 실패 삼국지 인물기행/제갈공명11 회가 시작됩니다 관중이 오나라와의 싸움으로 허술해졌다고 판단한 제갈공명은 또다시 북정을 결의했다. "선제께서는 위나라와 양립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한나라가 성도와 같은 오지에 도읍을 두고 있음을 심히 걱정하셨나이다. 그러기에 신으로 하여금 적을 치도록 부탁하셨던 것이지요. 하오나 선제께서는 신의 역량이 위나라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적은 아주 강하나이다. 그렇다고 해서 적과 싸우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면 왕업은 무너지고 말 것이옵니다." 제갈공명은 이렇게 시작되는 후출사표를 바쳤다. 12월 제갈공명의 군사는 산관을 넘어 진창을 포위했다. 위나라 수비병은 1천여 명이었고 그 장수는 학소였다. 수비는 매우 견고했다. 학소가 진창성을 굳세게 지..
오늘은 삼국지 인물기행/제갈공명10 회가 이어집니다. 기산을 향해 출격 촉한군은 제갈공명을 총대장으로 하고 성도를 출발했다. 성도에 있으면서 임무를 맡은 사람은 장완, 장예 등이다. 제갈공명은 성도를 떠나자 향로를 한중으로 잡았다. 한중에서 위나라 영토인 관중까지는 촉잔의 험로를 넘어 눈앞의 거리였다. 한중 땅에 들어가자 공명은 면수 북쪽인 양평관의 백마산에 본진을 쳤다. 한수의 흐름을 타고 내려가면 제갈공명이 젊었을 때 살다가 유비의 방문을 받았던 용중이 나온다. 공명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위나라에서 상용의 신성에 파견된 장수는 맹달이었다. 그는 촉한을 섬기다가 관우의 구원을 거부하고 위나라에 항복했었다. 그는 조비가 죽자 촉에 다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공명은 이 신뢰없..
삼국지 인물기행/제갈공명9 편이 이어집니다 제갈공명 출사표 "그대의 말이 옳소" 드디어 오나라와 촉한의 화친이 성립되었다. 서기 224년, 손권은 장온을 촉한으로 파견하여 국서를 봉정했다. 공식적인 축하연 자리에서 제갈공명은 진복을 장온에게 소개했다. 장온의 내방에 대하여 공명은 답례사절로 등지를 파견했다. 손권과 등지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만약 천하가 태평해지고 오촉의 두 주인이 정치를 한다고 하면 그 얼마나 즐거운 일이겠소" 등지가 대답했다. "하늘에는 두 개의 해가 없다고 하나이다. 위나라를 통합한 다음의 일은,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대왕이라고 해서 천명을 받으신 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사옵니다. 주군들께서 각기 그 덕을 쌓으시고 저희 신하들은 각기 충성을 한 다음, 무기를 들고 전쟁을 시작할 뿐..
유탁을 받은 제갈공명 후주 유선은 아버지인 유비가 걱정했던 것처럼 범용한 인물이었다. 그런 천자를 세우고 위나라, 오나라와 대항해 나간다는 것은 제갈공명에게 있어 곤란하고 고민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공명은 이 일에 감연히 맞섰다. 공명의 가장 큰 목표는 위나라를 무찌르고 유씨 천하를 부흥시키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인재를 발굴하고 기구를 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현재의 운남지방, 즉 당시의 익주군에 살고 있는 이민족을 평정해야 했다. 외교면에서는 오나라와 교섭할 필요가 있었다. 선제 유비는 관우의 원수를 갚겠다면 오나라와 싸웠으나 위나라를 무찌르기 위해서는 오나라와 동맹하지 않으면 안된다. 제갈공명은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을 어떻게 처리해 나갈 것인다. 그때 그는 승상, 군사중랑장, 녹상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