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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풍경 기행
삼국지 인물기행/관우3 시작 관우의 전설 번성 공방전부터 맥성 농성, 그리고 처형에 이르는 삼국지연의의 이야기 전개는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관우 사후에 전개되는 이야기는 정사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이 무렵 조조는 나이가 들어 극도로 쇠잔해졌고, 여몽도 병이 깊어 관우 사후에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이 두사람의 죽음이 관우의 원혼 때문이라는 민간의 전설도 생겨났다. 관우는 죽어서 곧바로 복수의 염원에 불타는 귀신이 되어 인간이 아닌 신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손권은 왜 관우의 머리를 조조에게 보냈을까. 당시 힘의 관계는 조조가 단연 우위에 있었다. 손권은 조조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고 그 목적을 달성하자 증거를 보낸 것을로 해석된다. 손권으로서는 유비와의 동맹을 파기하고 조조에 따르겠..
삼국지 인물/관우1 편에 이어 삼국지 인물기행2 편이 이어집니다. 재물의 신이 된 관우 관우는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사수관 전투에서 호걸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공손찬이 유비와 관우, 장비를 데리고 화웅을 물리칠 작전회의를 하고 있었다. 이때 전령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지금 화웅이 본진 앞까지 와서 싸움을 걸고 있습니다." 장군 두 사람이 도전에 응했지만 단 몇 합에 목이 날아가고 말았다. 원소가 명장이 없음을 탄식했다. 이때 관우가 나섰다. "제가 한번 해보지요. 화웅을 목을 가지고 와서 장군들에게 바치겠습니다." 원소가 화를 벌컥 냈다. "일개 마궁수 따위가 그따위 소리를 하는냐. 저 놈을 끌어내라" 옆에 있던 조조가 여러 장군들을 설득한 끝에 관우에게 더운 술을 한잔 권했다. "술은 그대로 놔두시..
관우는 왜 신이 되었나 언젠가 북경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미용실에 들어가 머리 컷트를 한 적이 있다. 미용실 한 구석에 화려한 도자기 인물상이 눈에 띄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 주인이 '관우'라고 답했다. 관우상 앞에는 새전을 담는 그릇이 놓여 있었다. 미용실 주인에게 관우는 청룡도를 휘두르는 명장이나 의리의 분신이라기보다는 부의 화신으로 부각되었다. 시골을 다니다보면 관제묘(관우 사당)이 있는데, 이때 관우는 사악한 무리를 물리치고 법을 수호하는 신으로 숭배된다. 춘절에는 대문 앞에 관우상을 붙여 놓는 집도 있다. 관우는 유비, 장비와 의형제를 맺고 평생을 충성과 의리로 살았다. 기록에 의하면 키가 2미터에 얼굴이 붉었으며 수염을 멋있어 미염공으로 불렸다. 이런 모습은 삼국지연의를 통해서 알려진 이미지..
관우에 이어 장비를 잃은 유비의 운명 삼국지 인물기행/제갈공명8 서기 216년 조조는 위왕이 되었다. 후계자를 조비로 정했다. 이듬해 조비, 조식 형제가 태자의 자리를 놓고 다투다가 암투를 벌였다. 조식이 실각했다. 이 분위기를 틈타 유비가 출병을 준비했다. 법정이 건의를 했다. "조조는 군사를 일으켜 장노를 항복시켰고 한중 땅을 평정했습니다. 그 승세를 타고 파촉을 취하지 않고 업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내부에 심상치 않은 정세가 있을 것입니다. 백성을 모아서 하후연, 장합 등을 치면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유비는 법정의 의견을 받아들여 한중 땅으로 출병할 것을 명햇다. 자신도 양평관으로 출진했다. 그는 성도를 지키고 있던 제갈공명에게 군사 지원을 요청했다. 공명은 즉시 증원부대를 파견했고, ..
삼국지 인물기행/제갈공명6 형주에 남아 있던 제갈공명은 유비가 진로를 서쪽으로 잡아 면죽을 거쳐 낙성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듣자,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되겠다며 관우만을 형주에 남겨둔 채 출발했다. 공명은 손권, 조운 등가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 파촉으로 향했는데, 도중에 파동, 강주 등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파군을 평정한 유비는 군단을 두로 나누었다. 일대는 장비가 장수가 되어 이끌며 파서에서 덕양으로, 다른 일대는 조운을 장수로 하여 강양에서 건위로 나와 각각 성도를 향해 진격해갔다. 낙성을 공격 중이던 유비는 그곳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낙성의 수비대장인 유순은 유장의 아들인에 성을 굳게 지키며 유비의 공격을 1년 동안이나 막아냈다. 이 때 방통이 전사했다. 낙성을 함락시킨 유비는 오랫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