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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풍경 기행
삼국지 인물/관우1 편에 이어 삼국지 인물기행2 편이 이어집니다. 재물의 신이 된 관우 관우는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사수관 전투에서 호걸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공손찬이 유비와 관우, 장비를 데리고 화웅을 물리칠 작전회의를 하고 있었다. 이때 전령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지금 화웅이 본진 앞까지 와서 싸움을 걸고 있습니다." 장군 두 사람이 도전에 응했지만 단 몇 합에 목이 날아가고 말았다. 원소가 명장이 없음을 탄식했다. 이때 관우가 나섰다. "제가 한번 해보지요. 화웅을 목을 가지고 와서 장군들에게 바치겠습니다." 원소가 화를 벌컥 냈다. "일개 마궁수 따위가 그따위 소리를 하는냐. 저 놈을 끌어내라" 옆에 있던 조조가 여러 장군들을 설득한 끝에 관우에게 더운 술을 한잔 권했다. "술은 그대로 놔두시..
유탁을 받은 제갈공명 후주 유선은 아버지인 유비가 걱정했던 것처럼 범용한 인물이었다. 그런 천자를 세우고 위나라, 오나라와 대항해 나간다는 것은 제갈공명에게 있어 곤란하고 고민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공명은 이 일에 감연히 맞섰다. 공명의 가장 큰 목표는 위나라를 무찌르고 유씨 천하를 부흥시키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인재를 발굴하고 기구를 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현재의 운남지방, 즉 당시의 익주군에 살고 있는 이민족을 평정해야 했다. 외교면에서는 오나라와 교섭할 필요가 있었다. 선제 유비는 관우의 원수를 갚겠다면 오나라와 싸웠으나 위나라를 무찌르기 위해서는 오나라와 동맹하지 않으면 안된다. 제갈공명은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을 어떻게 처리해 나갈 것인다. 그때 그는 승상, 군사중랑장, 녹상서..
관우에 이어 장비를 잃은 유비의 운명 삼국지 인물기행/제갈공명8 서기 216년 조조는 위왕이 되었다. 후계자를 조비로 정했다. 이듬해 조비, 조식 형제가 태자의 자리를 놓고 다투다가 암투를 벌였다. 조식이 실각했다. 이 분위기를 틈타 유비가 출병을 준비했다. 법정이 건의를 했다. "조조는 군사를 일으켜 장노를 항복시켰고 한중 땅을 평정했습니다. 그 승세를 타고 파촉을 취하지 않고 업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내부에 심상치 않은 정세가 있을 것입니다. 백성을 모아서 하후연, 장합 등을 치면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유비는 법정의 의견을 받아들여 한중 땅으로 출병할 것을 명햇다. 자신도 양평관으로 출진했다. 그는 성도를 지키고 있던 제갈공명에게 군사 지원을 요청했다. 공명은 즉시 증원부대를 파견했고, ..
삼국지 인물기행/제갈공명6 형주에 남아 있던 제갈공명은 유비가 진로를 서쪽으로 잡아 면죽을 거쳐 낙성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듣자,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되겠다며 관우만을 형주에 남겨둔 채 출발했다. 공명은 손권, 조운 등가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 파촉으로 향했는데, 도중에 파동, 강주 등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파군을 평정한 유비는 군단을 두로 나누었다. 일대는 장비가 장수가 되어 이끌며 파서에서 덕양으로, 다른 일대는 조운을 장수로 하여 강양에서 건위로 나와 각각 성도를 향해 진격해갔다. 낙성을 공격 중이던 유비는 그곳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낙성의 수비대장인 유순은 유장의 아들인에 성을 굳게 지키며 유비의 공격을 1년 동안이나 막아냈다. 이 때 방통이 전사했다. 낙성을 함락시킨 유비는 오랫만에..
삼국지 인물기행/제갈공명2 이런 분위기 속에서 때로는 제갈공명이 화제를 제공하기도 했다. “자네들은 관리가 되면 한 주의 자사나 군의 태수 쯤 되겠군.” 친구들이 공명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럼 자네는 어디까지 출세를 할 건가?” 공명은 빙그레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피했다. 사실 그의 소년기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그가 태어난 것은 후한 말, 황건적이 난이 발발하기 4년 전이다. 황건적이 난이 시작됐을 때 제갈공명은 3살, 조조는 29살, 유비 23살, 관우 22살, 장비 16살, 손권 2살, 주유 9살, 사마중달은 5살의 나이였다. 융중이야말로 제갈량의 청년시절 첫 흔적을 남긴 곳이다. 삼국시대를 황건적의 난 발발부터 위나라의 멸망까지 잡으면 184년부터 280년으로 약 100년에 해당된다. 위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