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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인물기행/제갈공명6

차이나리 2018. 3. 24. 21:33

삼국지 인물기행/제갈공명6

 

형주에 남아 있던 제갈공명은 유비가 진로를 서쪽으로 잡아 면죽을 거쳐 낙성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듣자,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되겠다며 관우만을 형주에 남겨둔 채 출발했다. 공명은 손권, 조운 등가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 파촉으로 향했는데, 도중에 파동, 강주 등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파군을 평정한 유비는 군단을 두로 나누었다. 일대는 장비가 장수가 되어 이끌며 파서에서 덕양으로, 다른 일대는 조운을 장수로 하여 강양에서 건위로 나와 각각 성도를 향해 진격해갔다. 낙성을 공격 중이던 유비는 그곳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낙성의 수비대장인 유순은 유장의 아들인에 성을 굳게 지키며 유비의 공격을 1년 동안이나 막아냈다. 이 때 방통이 전사했다.

 

낙성을 함락시킨 유비는 오랫만에 제갈공명, 장비, 조운 등과 만나서 성도 공격에 나섰다. 성도 포위 중에 마초를 아군에 편입시킬 수 있었다. 이 기회를 이용해 유비는 간옹을 파견하여 유장에게 항복하기를 권했다. 유장은 성문을 빠져나와 항복했다. 마침내 유비는 염원하던 파촉 점령에 성공했다.

 

성도에 입성한 유비는 승리의 축하연을 열고 제장들에게 공로를 나누어 주었다. 유비는 스스로 익주목이 되었다. 고굉지신인 제갈공명은 군사장군에, 모주 법정은 촉군태수에 임명되었다. 관우는 독형주사의 임무를 띄고 형주에 머물렀다. 장비는 파서태수, 조운은 익군장군이었다.

 

어느날 제갈공명은 형주에 있는 관우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요즘 마초라는 자가 투항해 온 것 같은데 나는 그 자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소. 그 인품과 재능은 대체 누구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사람이오?"

 

제갈공명은 답장을 써서 보냈다.

"맹기는 문무를 겸비하고 있으며 웅렬함은 남들보다 앞지르는 바가 있소이다. 실로 일세의 영걸이오. 한나라 고조의 신하였던 경포, 팽월에 비할 수 있으며 익덕과 앞을 다툴 정도요. 그러나 미염공을 능가하지는 못할 것이오."

관우는 그 수염이 길어서 미염공이라 불리었다. 관우는 공명의 편지를 받고 기뻐햇으며, 그 편지를 회람시켰다고 한다. 관우는 용맹했던 만큼 순진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관우의 용맹

그는 일찍이 전투를 하던 중, 유시를 맞아 왼쪽 팔꿈치에 부상을 입었다. 상처는 아물었으나 비가 내릴 때면 그 상처가 몹시 쑤셨다. 의원에게 보이니 수술을 해서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관우는 마침 술자리를 벌이고 있었는데 곧장 수술하라고 명했다. 피가 뚝뚝 떨어져서 쟁반에 흥건한데도 관우는 고기를 먹으며 술잔을 비우고 담소를 계속했다고 한다.

 

유비는 허정을 좌장군장사에 임명하여 제갈공명 밑에 배속시켰다. 공명은 군사장군으로서 국내 정비에 진력했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허약했던 그로서는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어느날 한 손님이 찾아와서 불만을 털어놓았다.

"법정은 촉군에서 안하무인격입니다. 제갈장군, 주공께 말씀드려 그의 횡포를 막아 주십시오."

 

제갈공명은

"우리 주군께서 공안에 계셨던 시절에는 북의 조조에게 위협을 당했고, 동쪽으로는 손권의 압박을 받아야 했소. 그런데다가 곁에는 손부인이 붙어 있으면서 괴롭혔다오. 그런 때 법정이 주군을 잘 보필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오. 그 공을 생각하면 그의 뜻대로 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겠소?"
라고 대답했다.

 

 

어느날 법정이 제갈공명에게

"옛날 한고조는 진나라의 폭정으로 신음하던 관중 땅에 들어갔을 때 그 가혹한 법률들을 모두 폐지하고 법삼장을 약속하여 민심을 얻었다고 하더이다. 이제 장군은 외부에서 이 촉 땅에 들어오셨고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했으니, 다소 형을 느슨하게 하시고 금을 푸시어 인망을 따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라고 하자 제갈공명은

"그대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구료. 진나라는 도에서 어긋나는 짓을 하여 백성들로부터 원망을 샀고 나라를 잃었소. 한고조는 관대한 정치를 펴서 백성들을 구원했엇던 것이오. 유장은 암약하여 그 아버지 유언 이래 명망이 있으면서도 유연한 태도로 정치에 임해 위형이 서지 못하고 멋대로 일을 저질러 군신의 도가 서지 못했던 것이오. 나는 법령을 엄하게 하되, 공이 있는 자에게는 관작을 주어 주군의 은혜에 보답케 하려는 것이오."

 

제갈공명은 성도에 머무르면서 파촉의 경영과 군량의 보급에 힘을 기울였다. 유비는 몸소 출전하였으나 형주의 국면이 유리하게 전개되지는 않았다. 이때 노숙이 관우에게 단둘이 만나서 담판을 짓자고 제안했다. 노숙은 손권 진영에서 유비파라고 할 수 있다. 공명이 관우를 형주에 남겨두고 촉으로 들어간 다음, 관우가 손권의 행동에 의심이 생겨 이따금 분쟁을 일으켰을 때, 노숙이 나서서 관우를 위무하고 사태를 수습했었다.

조조의 한중 지배

노숙이 먼저 말을 꺼냈다.

"유비는 이미 파촉의 땅을 차지했는데, 형주 땅을 돌려줄 생각을 하지 않는구나, 3개군이라도 돌려달라는데 그 명령에 따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관우는 칼을 뽑아 들며 나섰다.

"이 일은 국가의 대사다, 어찌 네가 나서서 참견을 하느냐"

성도에서는 제갈근과 제갈공명 형제가 형주 문제에 대해 절충하고 있었다. 이 형제는 회의석상에서 사적인 이야기는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공사의 구별을 엄중히 하려는 것이었다.과연 제갈가 다운 장면이었다.

 

이럴 때 조조가 군사를 이끌고 한중의 장노 정벌에 나섰다. 유비가 형주 문제에 주력하고 있어 한중 방면에 대해서는 소흘했다. 이런 판단에서 조조는 출병했다. 만년에 제갈공명의 호적수였던 사마중달은 이때 승상주부의 자리에 있으면서 조조에 직속되어 전투에 참가했다. 중달은 조조에게 헌책을 했다.

 

"유비는 유장을 속이고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파촉 백성들은 유비를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유비는 오와 강릉에서 다투고 있느 중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됩니다. 주군께서 한중을 취하자 파촉에서는 동요가 일고 있습니다. 군사를 몰아 이곳을 향하면 유비 세력을 와해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성인을 시를 따르고 또 시를 잃은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조조는 이 말을 듣자

"사람은 만족할 줄 모르기에 고뇌가 있는 법이오. 이미 농을 취했는데 또 촉을 바란다는 식이로군"이라며 신중했다. 한중의 이런 정세는 형주에서 대립하고 있던 유비, 손권에게 즉각 반영되었다. 양자는 화목했다. 형주 땅이 분할된 것이다. 유비에게 있어서는 일보 후퇴인 것은 사실이다.

 

이제 손권은 합비로 출병하여 동쪽에서 조조를 위협했다. 유비는 강주로 돌아가 황권에게 명하여 장노를 맞이해 오라고 했다. 그러나 장노는 그때 남저에 가서 조조에게 항복한 후였다. 한중은 조조의 지배력이 강했다. 유비와 손권은 각각 내정의 정비에 힘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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