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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인물/관우1

차이나리 2018. 4. 8. 21:46

관우는 왜 신이 되었나

 

언젠가 북경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미용실에 들어가 머리 컷트를 한 적이 있다. 미용실 한 구석에 화려한 도자기 인물상이 눈에 띄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 주인이 '관우'라고 답했다. 관우상 앞에는 새전을 담는 그릇이 놓여 있었다. 미용실 주인에게 관우는 청룡도를 휘두르는 명장이나 의리의 분신이라기보다는 부의 화신으로 부각되었다. 시골을 다니다보면 관제묘(관우 사당)이 있는데, 이때 관우는 사악한 무리를 물리치고 법을 수호하는 신으로 숭배된다. 춘절에는 대문 앞에 관우상을 붙여 놓는 집도 있다.

 

관우는 유비, 장비와 의형제를 맺고 평생을 충성과 의리로 살았다. 기록에 의하면 키가 2미터에 얼굴이 붉었으며 수염을 멋있어 미염공으로 불렸다. 이런 모습은 삼국지연의를 통해서 알려진 이미지다. 진수의 '삼국지' 기록에는 그가 완고한 성격을 가진 무장으로 의리를 목숨보다 중히 여긴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관우는 어떻게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부의 신으로 부각되었을까.

 

중국인들이 관우를 어떻게 대하는지 살펴보면 흥미로운 일들이 많다. 홍콩의 어느 경찰서에서는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서 안에 있는 관우상 앞에 가서 사건 해결을 기원한다고 한다. 마카오의 조직 폭력배들은 매일 관우상에 절을 한다. 태국 왕실에는 미술품으로 만들어진 관우상 수백 종류가 있다고 한다. 말레이시아 법정에서는 판사나 검사들이 관우상 앞에서 공정을 서약한 후 재판을 시작한다.

죄를 짓고 망명하다

대만에서는 인구의 20% 이상이 관우신을 숭배한다. 일본 오키나와에서는 전 인구의 절반 이상이 관우 매니아들이다. 일본에서 대지진이 일어난 후 제일 먼저 재건하는 곳이 관제묘라고 한다. 이쯤되면 관우는 사후 성인에서 신으로 승격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인들은 한자 문화권이 곧 관우 문화권이라는 말을 한다. 관우는 동남아 화교를 중심으로 아시아의 신으로 군림하고 있다.

 

관우는 산서성 운성시 출신이다. 운성시에 해지라고 하는 커다란 소금 호수가 있다. 현재도 중국 전체의 소금 생산량 중 70% 이상을 차지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소금과 철 생산이 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귀한 물품이어서 전매사업을 했다. 산서 상인들은 권력과 결탁해 소금 판매로 중국 경제를 지배했다. 관우가 부의 신이 된 것은 해지 소금과 관련이 있다. 관우는 소금장사들의 뒤를 봐주는 역할을 했다. 요즘으로 보면 유흥가에서 뒤를 봐주고 이익을 챙기는 조직 폭력배와 유사하다.

 

진수의 '삼국지'에서 관우는 '고향에서 죄를 짓고 망명하여 탁주로 도망쳤다'고 되어 있다. 관우는 악덕 소금 상인을 죽이고 고향을 등졌다는 것이 현대 역사가들의 설명이다. 관우는 고향인 상평촌에서 살 무렵, 대장장이, 목수, 두부장수 등을 했다는 설이 있다. 한편으로는 '춘주좌씨전'을 탐독해 주위의 시선을 받았다고 한다. 관우는 18세 때 결혼해 이듬해 장남 관평을 낳았다고 한다.

 

관우가 도망치게 된 내력을 보면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여웅이라는 소금 도매상이 여자들을 농락했다. 한 여인이 목을 매고 자결하자, 관우가 여웅을 살해했다고 한다. 관부에서 살인자를 잡으러 오자, 관우는 탁군으로 달아나 녹두장사를 하다가 유비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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