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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풍경 기행
인천 차이나타운 볼거리 베스트 12 본문
인천역 맞은편에 있는 패루 '중화가'를 지나면 차이나타운이 펼쳐진다. 이곳은 개항기 인천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곳으로 20여 군데의 볼거리가 산재해 있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중구 선린동과 북성동 일대에 정착한 화교들이 그들만의 생활문화를 형성한 곳이다.
초기에는 청나라 거상들의 점포와 음식점 및 주택들이 들어서 있었고 청나라 관청이 있는 동네라는 의미로 청관거리로 불렸다. 상거래가 활기를 띄면서 동순태, 동순동 등 거상들이 자리를 잡았고 중화루, 공화춘 같은 유명한 중국 요릿집들이 개점하는 등 매우 번성했다.
한국의 화교는 1882년 임오군란 때 광동성 군대를 따라 온 상인 40여 명이 한국에 체류하면서 교역을 한 것으로 부터 시작된다. 중국과 수륙무역장정 체결 이후 이들의 활동도 활발해졌다. 청국이 영사업무를 시작하자 상인들이 터를 잡기 시작했다. 인천 차이나타운 볼거리 베스트 12를 소개한다.
인천 차이나타운 볼거리 베스트 12
인천 지역의 화교사회는 상업이민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갔으며 점차 조선의 상권을 장악했다. 1900년 의화단 사건으로 산동성 일대가 전란에 휩싸이자 중국인들이 대거 한국으로 건너왔다. 이들은 주로 인천을 거주지로 삼았기 때문에 화교들의 본거지가 되어 서울과 함께 양대 세력을 형성했다.
인천에서는 일본의 조계지가 설정된 데 이어 1884년 청국 조계지가 형성됐다. 면적은 약 5천평이었다. 조선에 대한 중국의 정치 경제적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중국 이주자들이 급증해 거주지가 확장됐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이후 청국 조계지는 위축되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조계제도가 폐지되고 '지나마치'라는 이름으로 행정구역에 편입되었다.
광복 후 선린동으로 동명을 개정하여 옛날과 같은 친선교류를 유지코자 하였으나, 우리 정부가 화교의 경제권 확장을 제한하는 정책으로 인해 화교사회는 위축되었다. 1992년 한중수교를 계기로 이곳은 대중국 교류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1. 인천개항박물관
1883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금융기관인 일본 제1은행 부산 지점의 인천출장소로 개설됐다. 초기에는 해관세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금괴 및 사금의 매입 업무를 대행했으며, 점차 예금과 대출 등 은행의 고유 업무를 담당했다. 좌우대칭 절충주의 양식의 서구식 건축물로 웅장함이 인상적이다.
2.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일본 나가사키에 본점을 둔 일본 제18은행은 영국과의 면직물 중개무역으로 큰 이익을 거두자, 1890년에 인천지점을 개설했다. 이후 조선식산은행 인천지점, 한국흥업은행 지점으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근대건축전시관으로 조성되어 여러 근대 건축물을 전시하고 있다. 목재 트러스에 일식 기와로 모임지붕을 하고 있어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3. 구 일본 제58은행 지점
1892년 인천전환국에서 주조되는 신화폐 교환을 목적으로 일본 제58은행 인천지점으로 설립되었다. 이후 야스다 은행, 조흥은행 인천지점, 대한적십자 경기도 지사 사옥으로 사용되었다. 프랑스풍 벽돌조 건축물로 오르내림식 창문, 벽체, 기둥은 원형을 아직 유지하고 있다.
4. 인천부청사
현재 중구청 건물이다. 일본은 1883년 일본 조계지 내 자국민 보호를 목적으로 2층 목조건물인 영사관 본 청사를 준공했다. 1906년 2월 일제가 통감부를 설치하면서 이사청 청사로, 1910년 조선총독부 설치 이후에는 인천부청사로 사용되었다. 모더니즘 양식으로 수평의 긴 띠창이 특징이다.
5. 일본풍 거리
중구청 앞은 개항시대 일본인들이 거주하였던 조계지로,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근대건축물롸 최근에 꾸며진 근대식 건축물 및 조형물이 혼재되어 있다. 개항 초기 인천에 세워진 일본 주택들은 점포가 달린 목조 주택으로 마찌야 형식과 나가야 형식이 대부분이다. 1930년대 이후에는 일본의 문화주택이 곳곳에 세워졌으며 현재 관동과 신흥동 일대에 여러 채가 남아 있다.
6. 홍예문
응봉산을 관통하여 인천항과 전동을 연결하는 아치형 돌문으로, 1905년 일본 공병대에 의해 착공되어 1908년 완공되었다. 일본을 이를 통해 포화 상태였던 조계지를 만석동까지 확장할 수 있었으며, 홍예문 위로는길이 생겨 내리교회에서 자유공원 어귀까지 이어지는 산책로가 형성되었다.
7.내리 교회
1885년 북감리회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선교하러 들어와 1891년에 세운 감리교회다.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 중 하나로 한국의 어머니 교회라고도 불린다. 2대 목사 존스는 1901년 현 내리교회 자리에 십자가형 벽돌 예배당을 세웠다. 50여 년의 세월이 흐른 1958년 연면적 1천 평방미터 규모의 2층 교회당이 완공됐다. 이 건물은 화재로 전소되고 1895년에 현재의 예배당이 완공되었다.
8.답동 성당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빌렘 신부가 1889년 제물포 성당을 창설한 것으로 시작된다. 현재의 건물을 1937년에 건립되었다. 벽돌로 만든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1890년대에 건축된 한국 성당 중 가장 오래된 서양식 근대건축물 중 하나다. 이런 역사적 의미를 인정받아 1981년 사적 287호로 지정되었다. 초대 신부인 빌렘 신부는 안중근 의사에게 세례를 주었으며 1910년 3월에는 릐순 감옥으로 찾아가 안중근 의사와 동양평화론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9. 한국근대문학관
공공종합문학관으로 19세기 개항장 창고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성장을 주제로 한 상설전, 기획전시, 인문학 강좌 등 다양한 형대의 근대문학을 체험할 수 있다.
10. 인천 아트플랫폼
구 일본우선주식회사를 비롯한 근대 개항기 미치 1930년대 건축물을 리모델링하여 창작 스튜디오, 공방자료관, 교육관, 전시장, 공연장 등 총 13개 동의 규모로 조성되었다. 개항기 도시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문화적으로 재활용하자는 시민들의 뜻이 담겨 있다.
11.중 문화관 및 화교 역사관
한국과 중국의 역사가 공존하고 있는 인천 차이나타운에 위치하고 있다. 한중문화관에서는 한중문화교류을 위한 다양한 공연과 중국문물 전시실, 중국문화체험 프로그램 등이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화교전시관인 화교역사관에는 1894년 차이나타운에 정착한 화교들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각종 유물들을 볼 수 있다.
12.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
1883년 설정된 일본과 청국의 초계지의 경계로 중앙에 돌계단이 있다. 양쪽에 조경공간을 두었으며 계단 위쪽에는 중국 청도에서 기증한 공자상이 위치하고 있다. 인천의 근 현대사를 단적으로 볼 수 있는 곳으로 좌측으로는 청국, 우측으로는 일본의 조계지가 위치했다. 계단을 중심으로 좌우의 다른 건축양식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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