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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풍경 기행
삼국지 인물기행/제갈공명3 본문
삼국지 인물기행/제갈공명3
제갈공명이 열일곱 살 때부터 유비를 만나 전선에 나간 스물일곱 살 까지 청경두독하던 곳은 양양(호북성)이었다. 섬서성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호북성을 종단하여 한구로부터 한수로부터 양자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한수에서 남쪽으로 꺽이는 지점이 양양으로 옛부터 교통의 중심지였다.
공명은 키가 8척이 넘는 청년이 되었다. 공명의 꿈은 관중같은 재상이나 악의와 같은 장군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주위에서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다만 최주평과 서서만이 그의 재능을 인정해 주었다. 공명은 이 두친구와의 우정에 대해 훗날 이런 말을 남겼다.
"친구란 공리적인 교제를 하면 오래 사귈 수가 없다. 선비가 서로 알게 되면 상록수처럼 따뜻해지면 화려함을 더하고 추워져도 잎을 바꾸지 말아야 한다. 우정은 일년 내내 쇠해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곤란한 문제에 부딪히면 그 교제는 점점 더 굳어져 가야 한다"
양양에는 스승으로 존경받던 인물로 사마휘가 있었다. 방덕공과 아들인 방산민도 있었는데, 그 아들은 공명의 여동생을 아내로 맞아 두 사람은 동서가 되었다. 사마휘의 사람 보는 통찰력이 깊어 인물평이 유명했다.
"제갈공명은 와룡이고, 방사원은 봉추야. 사마휘는 두 사람을 비춰주는 거울(수경)이지."
이런 사람들을 중심으로 양양의 사교계는 천하의 대란을 화제거리로 내세웠다. 유비가 형주에 몸을 의지하고 있을 때 공명은 아직 스물한 살의 청년에 불과했다. 두 사람이 만나기까지는 아직 7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그 7년 동안 유비는 인생에서 가장 험한 풍파를 만나고 있었다. 유비가 어느날 뒷간에 갔다가 허벅다리에 군살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탄식했다는 비육지탄의 고사가 생겼다.
어느 날, 황승언이 공명을 찾아왔다. 황승언은 양양의 명사로서 채풍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다. 채풍의 딸 하나는 유표의 후처가 되었다.
"자네는 아내감을 구하는 중이라고 하던데, 실은 나에게 딸이 하나 있네. 비록 용모는 내세울 것이 없지만 재능은 뛰어나다네. 그대가 아내로 맞아들여도 손색이 없을 걸세."
공명은 황승언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세상 사람들이 공명의 혼인을 어릭석은 것이라며 떠들어댔다. 그러나 이 여인은 현부인으로서 제갈공명의 좋은 반려자가 된다.
어느날, 공명의 집에 손님이 찾아와 부인에게 국수를 만들어 오라고 명했다. 부인이 순식간에 국수를 말아서 내왔다. 공명은 이 일을 이상하게 여겨 안마당을 기웃거렸더니 나무로 만든 인형이 보리방아를 찧고 있었다. 이것이 후일 그가 목우, 유마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유표 밑에서 별 활동없이 지내던 유비가 서서히 활동을 재개했다. 그에게 서서 같은 인물이 드나들었다. 유비에게는 도원결의를 맺은 관우와 장비 그리고 조운 등 일기당천의 장군이 있다. 그러나 시세의 변화를 꿰뚫어보고 대응해 나가는 정치적 외교적 수완을 갖춘 참모가 없었다. 유비는 서서에게 인물 추천을 부탁했다.
"제 친구 가운데 제갈공명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와룡이라고도 하지요. 한번 만나 보시겠습니까?"
"그대와 친구라니 그대가 가서 데려오는 것이 어떻겠소"
"그런 사람은 이쪽에서 찾아가서 만나셔야지 부르시면 안됩니다. 장군께서 친히 말을 몰아 공명의 집으로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양양 고성
유비는 서서의 말을 듣고 직접 융중에 있는 공명의 초려를 찾아갔다. 신야와 융중은 20리 길이다. 유비는 이 길을 세 차례 방문한 끝에 겨우 공명을 만날 수 있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삼고초려다. 공명은 관중이 섬긴 환공같은 인물이 나타나지 않음을 한탄하고 있을 때 였다. 그는 유비의 사람 됨됨이를 나름대로 알고 있었다.
일설에 의하면 유비와 제갈공명의 만남은, 유비가 형주에 왔을 때의 일로서 공명이 먼저 찾아갔다고 한다. 공명은 조조가 북방평정을 이룩했다는 소식에 접하자 형주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형주목 유표는 전쟁을 할 위인이 못되었다. 그래서 유비를 의지하여 안전을 확보하려고 했다. 유비가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 공명은 말석에 앉았다. 마침내 말을 꺼냈다.
"장군께서는 큰 뜻을 가지고 계시지요. 망설일 때가 아닙니다."
공명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장군께서 생각하시는 바를 말씀해 주십시오. 유표의 힘은 조조에 비해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도저히 미칠 수 없지."
"그럼 장군의 역량을 조조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역시 미칠 수가 없지."
"장군이 거느리시는 소수의 병력으로 적을 기다리는 것은 계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유비는 눈을 크게 뜨며 공명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나도 그것을 걱정하고 있소. 어떻게 하면 좋겠소."
"원래 형주 땅은 인구가 적은 곳이 아닙니다. 유표에게 말씀하시어 온 백성들에게 영을 내려 병사들을 징벌하여 군대를 수를 늘리십시오."
유비와 공명의 만남
유비는 그 계략에 따랐고 공명을 상객으로 대우했다. 이때 공명이 유비에게 설명했던 것이 초려대로서 천하삼분지계라고 불리는 것이다. 유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한나라 조정이 기울자 악신들이 천자의 권한을 함부로 훔치고 있소. 내가 군사를 일으키긴 했지만 지와 술이 얕아 실패를 거듭했소. 그래서 선생을 찾아왔소. 대체 어떻게 하면 좋겠소."
공명이 유비의 질문을 듣고 답을 시작했다.
"동탁이 낙양에 들어가자 호걸들이 일어섰습니다. 조조는 원소에 비해 명망이 낮고 병사도 적었지요. 하지만 조조가 최후에 이르러 원소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천시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지략의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조조는 백만대군을 거느리고 있으며 또 천자를 옹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자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명령을 제후들에게 내리고 있지요. 싸워서 이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손권 역시 대단한 인물입니다. 오는 지세가 험준하여 지키기가 쉽고 백성은 잘 따르며 그 밑에는 현인과 능자가 충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형주를 지키는 유표는 무능합니다. 이 형주 땅은 하늘이 장군에게 내린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한나라 고조는 이 땅에서 천하의 위업을 이루었습니다. 만약 형주와 익주, 이 두 주를 내것으로 만드시어 적이 습격해 오지 못하도록 국경을 튼튼히 하고 오나라 손권과 화목하면 나라를 보존할 수 있습니다. 패업이 성취되면 장군께서는 한실을 재흥시키고자 하는 목적도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비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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