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풍경 기행

삼국지 인물기행/관우2 본문

역사기행

삼국지 인물기행/관우2

차이나리 2018. 4. 10. 13:04

삼국지 인물/관우1 편에 이어 삼국지 인물기행2 편이 이어집니다.

 

재물의 신이 된 관우

 

관우는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사수관 전투에서 호걸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공손찬이 유비와 관우, 장비를 데리고 화웅을 물리칠 작전회의를 하고 있었다. 이때 전령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지금 화웅이 본진 앞까지 와서 싸움을 걸고 있습니다."

장군 두 사람이 도전에 응했지만 단 몇 합에 목이 날아가고 말았다. 원소가 명장이 없음을 탄식했다.

 

이때 관우가 나섰다.

"제가 한번 해보지요. 화웅을 목을 가지고 와서 장군들에게 바치겠습니다."

원소가 화를 벌컥 냈다.

"일개 마궁수 따위가 그따위 소리를 하는냐. 저 놈을 끌어내라"

옆에 있던 조조가 여러 장군들을 설득한 끝에 관우에게 더운 술을 한잔 권했다.

 

"술은 그대로 놔두시지요. 이내 돌아올 것이외다."

관우는 긴 칼을 들고 날듯이 말에 올랐다. 진 밖에서 소리가 요란했다. 제후들이 놀라서 싸움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관우가 돌아왔다. 관우의 손에 화웅의 목이 걸려 있었다. 그것을 땅바닥에 집어던지고 온기가 남아 있는 술을 마셨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소설일 뿐이다. 실제 양웅이 전사한 곳은 사수관이 아니라 양인이었다. 그를 사로잡은 것도 손견의 군대였다.

 

하비성 점령에 대한 공로로 유비는 좌장군, 관우와 장비는 중랑장에 임명되었다. 당시 군대에는 대장군 밑으로 표기, 차기, 위, 전, 후, 좌, 우 등 모두 7장군이 있었다. 촉서 관우전에는 관우의 이미지를 깨는 기록이 있다. 여포가 화친을 요청하자 관우가 '그의 아내는 내가 갖겠다'고 해서 조조가 허락했다고 한다. 그 아내가 실제로 미인임이 드러나자 조조 자신이 차지해 버렸다. 이에 관우는 불쾌한 심기를 드러냈다고 한다.

 

전설상에서 관우는 구설수에 오른다. 동탁의 시녀인 초선이 여포를 유혹해서 동탁을 죽게 만든 후 여포의 아내가 되었다. 조조는 세 의형제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관우에게 초선을 주었다. 관우는 초선의 치마자락에 빠져 밤낮을 보낸다. 유비가 힐책을 하자 잘못을 깨달은 관우는 초선에게 멀어지기 위해 그녀를 죽이게 된다는 것이다. 송대와 원대에는 관우 신앙이 확산되었다. 인간 관우가 신으로 등극하는 이야기로 각색된다.

관우가 주판을 만들다

조조의 포로가 되어 허창으로 돌아온 관우에 대해 정사인 삼국지 촉서 관우전에서는 조조가 관우를 황제와 배알케 하여 편장군에 봉하게 하고 대한히 후하게 대했다고 쓰고 있다. 관우는 조조가 준 집을 안팎으로 나누어서 안쪽에 두 형수를 모시고 바깥쪽은 나이든 병사들을 배치해 경호를 맡겼다. 자신은 다른 건물에 기거하며 두 부인을 보살폈다.

 

조조는 자주 잔치를 열어 관우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 금과 은으로 된 그릇과 비단 외에 열 명의 미녀까지 주어 관우를 모시도록 했다. 그러나 관우는 귀중품을 모두 두 부인에게 주어 간직하게 하고 미녀들도 안채에 보내 시중들게 햇다. 어느날 조조는 관우의 말이 야윈 것을 보고 여포가 타던 적토마를 선사했다. 관우는 그때서야 예를 표했다.

 

"적토마는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말이라 들엇습니다. 형님이 계신 곳을 알면 이 말을 타고 곧바로 달려가면 하루만에 만나뵐 수 있을 테니까요."

이에 조조는 관우에게 적토마를 준 것을 크게 후회했다.

 

마침내 관우는 조조 곁을 떠나며 편지를 보냈다.

"저는 일찍이 유비 형님을 섬겨 생사를 갖이 하기로 맹세하였습니다. 승상께서 하비성이 함락될 때 신이 내건 세 가지 조건을 관대하게 받아주셨습니다. 얼만 전 옛주인이 원소의 진영에 계시다는 것을 알았기에 약속을 지키기로 결의하였습니다. 무디 신의 사정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관우는 그동안 조조에게 받았던 금은보화를 일일이 봉해 곳간에 집어넣고, 한수봉후의 인을 처소 벽에 걸어놓았다. 당시 무장이나 고관이 은혜를 베풀어준 사람의 곁을 떠날 때는 그동안 받았던 물품을 돌려주는게 예의였을 것이다. 고가의 선물을 돌려준 관우에게 성실하고 정직한 남자의 이미지가 붙었을 것이다.

 

이로 인해 관우는 상업신으로 발전하고 동남아시아에서 관제문화를 탄생시킨다. 조조에게 받은 금품이 많아서 그 금액을 한산하기 위해 고안해 낸 도구가 주판이라는 설도 있다. 관우가 계산을 할 때 독특한 이진법을 사용해 컴퓨터의 선구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헤어진 관우와 조조는 훗날 전혀 다른 입장으로 맞닥뜨리게 된다. 젹벽대전 후에 다시 만날 때는 입장이 달라진다. 하지만 관우는 인정에 호소하는 조조의 감언에 넘어가 대사를 그르치고 만다.

 

 

'역사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이섬에서 동정춘을 마시다  (0) 2025.05.04
삼국지 인물기행/관우3  (0) 2018.04.13
삼국지 인물/관우1  (0) 2018.04.08
제갈공명 처세술 명언  (0) 2018.04.04
삼국지 인물기행/제갈공명12  (0) 2018.04.04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