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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에 올라보니

차이나리 2018. 2. 11. 22:03

태산을 가다

 

황제들의 봉선의식

 

중국은 예로부터 오행의 영향을 받아 오악을 신성시 했다. 그 중에 동악에 해당하는 태산은 사람이 죽으면 모두 여기에 모인다고 생각했다. 역대 제왕들은 이곳에서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의식을 치렀다.

 

황제가 태산 산기슭과 산정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 봉선제였다. 봉선 의식은 덕치로서 이름을 높인 명군만이 행할 수 있었다. 진시황을 비롯, 한무제, 후한의 광무제, 당고종과 현종, 북송의 진종, 청의 강희제 등이 스스로를 명군이라 생각하고 봉선제를 지냈다.

 

특히 한무제는 태산 참배에 열을 올려 일곱 번이나 행했다. 청의 건륭제는 여섯 번 태산에 올랐으나 스스로 겸손한 나머지 봉선제는 지내지 않았다. 의식을 행하려면 산기슭에 토단을 만들고, 제문을 옥돌에 새긴 옥첩서를 토단에 매장했다. 제를 지내기 전에 산 둘레를 호위병들이 몇 달 전부터 진을 치고 일반인의 출입을 막는다.

 

 

태산을 오르는 길은 두 갈래다. 셔틀버스를 타고 중천문까지 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 부근남천문까지 가거나 처음부터 걸어서 가는 방법이다. 걸어가자면 7천 개의 계단을 밟아야 한다. 걸어서 오르다보면 태산 갈 일이 정말 태산같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길 양쪽에는 도교 사원이 있어 곳곳에 피운 향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민간신앙에 있어서 태산의 신은 태산부군이라 불리는데 사람의 수명을 관장한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여기로 돌아와 생전의 행위의 선과 악을 재판받는다고 한다. 도교의 여러 신들 중 최고신인 옥황대제(원시천존)를 제사하는 옥황묘와 여신의 벽하원군을 제사하는 벽하사가 산정 가까이에 있다.

 

이런 축은 모두 명말 이후의 중수된 것이다. 또한 100여개의 석비와 마애가 산중에 있다. 경석곡에 있는 남북조시대의 금강반야경의 석경은 사방 30~40cm의 예서 약 2000(1043자가 현존)로 이루어져 있다. 그외 조양동굴 부근에 있는 청나라 건륭제의 만장비가 있다.

 

중천문 부근에는 계류의 암석에 1천 자 이상 경문을 새긴 경석욕이나, 시황제가 비를 피한 곳이라 해서 오대부라는 작위를 받은 소나무가 있다.

당현종의 기태산명비

정상 가까이 가면 당 현종이 봉선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태산명비가 눈길을 끈다. 높이 13미터, 5미터로 996개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중국정부가 이 글자에 금을 입혀 보호하고 있어 사진 명소로 알려져 있다. 해발 1,524미터의 옥정산을 주봉으로 하는 태산에 올라서면 태안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태산은 산동성 태안시에 있어 태안역이 있었으나 태산역으로 바뀌었다. 태안시 남쪽에 동악묘라 불리는 대묘가 있다. 황제들이 정상에 오르기 전에 봉선의식을 올렸던 곳이다. 경내의 천황전은 북경 자금성의 태화전, 곡부에 있는 공자묘 안의 대성전과 함께 중국 3대 전각으로 유명하다.

 

 

대묘는 광대한 부지에 묘우가 늘어서 있고 한장천비 등의 옛 비석이 즐비하다. 그중에도 천황전은 송의 진종이 창건한 주전으로 몇 차례나 화재의 고비를 넘긴 매우 오래된 건물이다. 묘내 한 구석 동어좌에는 생애를 비극적으로마친 진나라 승상 이사가 썼다는 '진이세태산석각'이 있다.

 

중국인들은 옛날부터 높은 산이나 강에는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마다 국가적인 제사를 행했다. 오악은 동악으로 태산, 서악으로 화산, 남악으로 형산, 북악으로 항산, 중악으로 숭산이 있다. 또 4개의 대하는 황허, 장강, 회하, 제수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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