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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인물기행/제갈공명8

차이나리 2018. 3. 29. 21:42

유탁을 받은 제갈공명

 

후주 유선은 아버지인 유비가 걱정했던 것처럼 범용한 인물이었다. 그런 천자를 세우고 위나라, 오나라와 대항해 나간다는 것은 제갈공명에게 있어 곤란하고 고민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공명은 이 일에 감연히 맞섰다.  공명의 가장 큰 목표는 위나라를 무찌르고 유씨 천하를 부흥시키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인재를 발굴하고 기구를 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현재의 운남지방, 즉 당시의 익주군에 살고 있는 이민족을 평정해야 했다. 외교면에서는 오나라와 교섭할 필요가 있었다. 선제 유비는 관우의 원수를 갚겠다면 오나라와 싸웠으나 위나라를 무찌르기 위해서는 오나라와 동맹하지 않으면 안된다.

 

제갈공명은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을 어떻게 처리해 나갈 것인다. 그때 그는 승상, 군사중랑장, 녹상서사에다가 사예교위, 영익주목의 벼슬을 다하여 문무의 권력을 그 수중에 거머쥐었다. 유비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문이 나자 위나라에서는 제갈탄 등이 각각 제갈공명에게 편지를 보내어 항복할 것을 권했다. 공명을 답을 보내지 않고 '정의'라는 글을 초안했다.

 

"정치를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덕이다. 옛날 항우는 덕을 닦지 못했기에 한때는 제라고 칭했지만 고조에게 멸망당하여 극형에 쳐해졌었다. 이 일을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조조는 이런 교훈을 배반했다. 그 자신은 화를 면했지만 자손들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승패의 분기점은 수의 다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덕과 정의의 유무에 있다. 조조를 사력을 쓰며 모아들인 수십만의 무리를 이끌고 장합의 군사를 양평에서 구원했지만 최후에는 한중을 잃고 자신도 도망쳐야 했다. 신기는 멋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고 그는 죽었다.

그 아들인 조비는 아비를 능가하는 무법자로서 마침내 제위를 찬탈하고 몇몇 사람에게 옛날 소진과 장의와 같은 궤변을 우롱케 함으로써 자신을 찬미하는 글을 쓰게 하였다. 이런 일이 어찌 군자가 할 일이란 말인가"

 

제갈공명은 위나라를 항우 왕망에게 비유하고 촉한이야말로 고조, 세조의 업을 계승하였음을 내외에 선포하는 한편, 촉한의 입장을 명확히 알렸다. 그는 동시에 군계를 발표했다.

 

"옛날, 황제는 수만명의 군사를 정비하여 사방을 평정했다. 하물여 지금 수십만 명을 이끌고 도리에 따라 유죄자에 임한다면 이를 방해할 자가 있겠는가."

 

유비가  거병할 당시부터 행동을 같이 했던 사람들은 이제 조운을 빼놓고는 거의 모두 세상을 빼놓고는 거의 모두 세상을 떠났다. 이제 새로운 인재의 등장이 요망되었다. 이 무렵 제갈공명이 부하들에게 한 훈시가 있다.

 

"무릇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중지를 모으고 성심을 다하여 이를 펼쳐 나가기 위함이다. 만약 사소한 의문도 돌아보지 않고 갖가지 잘못된 의견을 검토하지 않은 채 방치해둔다면 손실을 가져올 뿐이다. 여러 가지의 의견을 검토하고 중용이 얻어진다면 그것은 해져 버린 짚신을 버리고 주옥을 얻은 것과 같은 것이리라. 인간이란 그런 일을 알고 있으면서도 충분히 실천할 수 없는 점에 고뇌가 있기 마련이다. 다만 내 친구인 서원직은 의혹 없이 일을 처리했었다. 동유재는 나와 함께 정사를 보기 7년, 일에 대하여 충분히 납득할 수 없으면 열 번이고 의견을 나누면서 납득을 시키려 했었다. 제군들은 이 서원직이나 동유재의 10분의 1이라도 좋으니 주도면밀하게 일에 임해 주기 바란다. 그러면 나도 과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며 나라에 충성할 수 있을 것이다."

 

제갈공명은 실로 세세한 점에 이르기까지 신경을 써 가면서 사무를 다루었다. 그는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이 직접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성질이었다. 솔선수범일 수도 있겠지만 리더로서는 반드시 취해야 할 일은 아니다. 일찌기 주부 양옹은 장부를 스스로 조사하고 있는 공명에게 충고한 일이 있다.

 

"정치를 하는 데는 각기 그에 따른 체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상장과 부하가 업무를 분담하되 그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됩니다. 여기 한 가장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남종이 있어서 경작을 알게 하고, 여종에게는 취사를 하게 하며, 닭에게는 시각을 알게 하고, 개에게는 도둑을 지키도록 합니다. 그러니 배개를 높이 베고 자며 먹고 마실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그 일들을 전부 자기가 하려고 하면 몸도 마음도 바쁠 뿐 아니라 한 가지도 없게 되고 맙니다. 가정을 경영하는 방법이 틀린 것입니다. 지금 대감께서 하고 계신 정치를 보면 장부까지 손수 검토하고 계십니다. 그처럼 온종일 수고하시고도 치지시지 않으십니까?"

남방평정

이민족 서남이의 추장인 옹개는 유비가 죽자 그 틈을 타서 반란을 일으켰다. 제갈공명은 토벌의 단안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즉시 행동으로 옮길 수 없었다. 유비가 사망한 직후였고 민심을 자극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오나라와 위나라를 동시에 상대로 해서 싸운다는 것은 촉한의 현재 세력으로 볼 떄 무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판단 아래 제갈공명은 월추의 운관을 폐쇄하는 선에서 일단락 지었다.

 

초한과 오나라는 위나라의 압박을 받게 되자 위나라를 무찌르려면 동맹관계에 있는 편이 바람직하나든 의견이 강해져서 다시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다. 어느날 둥지가 제갈공명에게 진언했다.

 

"지금 주상은 어리시고 보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오나라에 대사를 보내시어 동맹을 맺으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제갈공명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실은 나도 그 일을 얼마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적당한 인물이 떠오르지 않는구려. 그런데 오늘에야 그 적임자가 생각났소.

 

"그게 누구입니까?"
"바로 그대요."

 

등지는 촉한의 특산품을 가지고 오나라를 향해 출발했다. 등지는 손권에게 직접 상주문을 올렸다. 등지는 겨우 손권과 회견할 수 있었다. 손권이 등지에게 말했다.

 

"과인은 진심으로 촉한과 화친관계를 맺고 싶소이다. 그러나 촉한의 전자는 너무 어리고 국토도 좁소. 또 국세도 강상하고는 볼 수 없고...  위나라로부터 공격을 당한다면 견뎌내지 못할 것이오. 그래서 유예하고 있을 뿐, 결심을 못 하고 있는 중이오."

 

촉한을 얕보는 발언이었다. 등지는 강경하게 나섰다.

 

"촉한의 제갈공명은 천하의 걸물이지요. 촉한에는 견고함이 있고 오나라에는 삼강의 요새가 있습니다. 이 양국의 힘을 합쳐, 서로 순치관계를 맺는다면, 나가 싸울 경우 천하를 통일할 수가 있고, 물러서더라도 천하삼분지계를 세울 수가 있나이다. 위나라가 군사를 일으키면 강남 땅은 두번 다시 대왕의 손에 돌아오지 못하지 않겠나이까"

 

말이 없던 손권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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